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 외갓집에서 머물며 뛰어 놀던 추억이 있다. 푸근한 외할머니 품에 안겨 시원한 수박을 먹던 그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도 뜨거운 여름날을 이기는 한줄기 쉼이 된다. 점점 여름을 즐길 시골이 사라진 요즘, 아이들에게 여름방학 시골 외갓집의 추억을 선물해 줄 순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경기도내 마을기업을 찾았다. 시골의 정취가 살아 숨 쉬는 경기도 대표 마을기업의 여름 풍경 속으로 떠나보자. [편집자 주]

덜컹덜컹~ 트랙터 마차 타고 시골 정취에 ‘풍덩’

◇경기 양평 질울고래실마을에서 ‘트랙터 마차’를 타고 옥수수 수확 체험을 하러 가는 아이들. 덜컹덜컹 흔들리는 마차를 타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경기G뉴스 허선량


수원에서 출발해 양평대교를 건너면 남한강을 따라 길게 강변도로가 이어진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한참을 달리다보면 푸른 청계산 자락으로 향하는 질울고래실마을의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꼬불꼬불 논길을 올라가면 작은 다리와 함께 한옥 문으로 꾸며진 마을 입구가 보인다. 마을 공터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그 옆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는 질울고래실마을에선 이미 130여명의 체험객이 모여 마을탐험이 한창이다.

“우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트랙터 마차’가 마을 공터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트랙터 마차는 아이들을 태우고 옥수수밭으로 향한다. 나무 마차에 아이들이 모두 올라타자, 운전대를 잡은 마을 삼촌의 출발 신호와 함께 트랙터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길 위를 달리는 트랙터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였다. 아이들을 태운 마차는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옥수수밭에 도착했다.

“옥수수는 몇 살일까요?”
“다섯 살이요.”
트랙터 마차를 운전한 마을 삼촌의 질문에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옥수수가 다섯 살이야? 왜 다섯 살이지?”
“저희가 여섯 살이니까요.”

옥수수를 자신들보다 한 살 어린 동생으로 설정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대답이 기발하다. 체험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팔뚝보다 더 큰 옥수수를 따는 아이들의 얼굴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덜컹덜컹~ 트랙터 마차 타고 시골 정취에 ‘풍덩’

◇양평 질울고래실마을에서 옥수수 수확 체험을 하는 아이들. ⓒ경기G뉴스 허선량


■ 서울에서 1시간 이내…자연을 품은 마을

옥수수 따기 체험이 끝난 후 다시 트랙터 마차를 타고 마을에 도착하자 어느새 12시, 점심시간이다. 마을 식당에는 어르신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시골 밥상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호박, 오이지, 김치, 돼지 주물럭과 시원한 오이 냉채국으로 꾸며진 밥상은 어르신들의 정성이 더해져 꿀맛이었다.

점심 뒤에는 물놀이가 시작됐다. 논에 방수포를 깔아 만든 농구장 2개 크기 정도 간이 물놀이장에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성인 무릎 높이의 논 풀장은 계곡처럼 돌에 긁혀 다치거나 모기에게 시달릴 우려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3~5세 아이들이 논 풀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동안 또 다른 체험팀은 ‘나무수레 씽씽이’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린다.

질울고래실마을의 인기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무수레 씽씽이’는 옛 선조들이 나무를 이용해 타고 놀던 수레를 개조해 만든 독특한 탈거리다.

마을 정미소에서 마을 공터까지 내리막길을 나무수레를 타고 내려가는 것인데 속도가 상당하다. 수레가 내려오는 내내 눈을 질근 감은 아이들의 입에선 비명이 절로 나온다.

서울시 서초구에서 다섯 살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은 박도현 씨는 “지난해 어린이집 체험 활동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는데 프로그램이 너무 맘에 들었다”며 “올해에는 맘이 맞는 동네 엄마들과 함께 왔는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어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40분 정도 걸렸다”며 “질울고래실마을은 서울 인근에서 농촌과 자연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고 덧붙였다.



덜컹덜컹~ 트랙터 마차 타고 시골 정취에 ‘풍덩’

◇내리막길을 달리는 나무수레 씽씽이. 빠른 속도에 아이들의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온다. ⓒ경기G뉴스 허선량


■ 농사이야기·시골밥상 체험 등 프로그램 특화

“질울고래실마을은 산이 마을을 울타리처럼 휘감은 동네라는 뜻의 ‘질울’과 물이 풍부해 푹푹 빠지는 논을 뜻하는 ‘고래실’을 합성한 이름이에요. 예부터 물이 많아서 밥맛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해요. 현대에 들어선 왕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로 유명한 마을이기도 하죠.”

밥맛 좋기로 소문난 이곳은 이제 농촌체험으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현재 질울고래실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서영 사무장은 “자연보전권역인 이곳은 식당도 들어올 수가 없을 정도로 규제가 심하다”며 “그렇게 지켜진 자연환경이 질울고래실마을의 경쟁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장은 이어 “질울고래실마을은 따로 홍보를 하지 않는다”며 “이곳을 다녀간 체험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라고 덧붙였다.

질울고래실마을에서는 농촌 체험에서 물놀이까지, 한자리에서 해결이다. 이 풀장에 메기를 풀어 아이들이 손으로 잡고, 그 메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는 일정도 있다.

이와 함께 체험객에게 제공되는 친환경 먹을거리와 농사 체험도 이 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



덜컹덜컹~ 트랙터 마차 타고 시골 정취에 ‘풍덩’

◇이서영 사무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꿋꿋이 지켜온 질울고래실마을만의 원칙들이 현재의 마을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경기G뉴스 허선량


“농촌 체험마을이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먹을거리가 부실해지거나 농사 체험 등이 뒤로 밀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돼요. 하지만 질울고래실마을은 농촌의 현실을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전하자는 초기의 목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이곳에서 제공되는 먹을거리 또한 모두 신토불이 재료로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만든 것들이에요.”

이 사무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꿋꿋이 지켜온 이 원칙들이 현재의 체험마을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체험객도 일정 수준 이상 받지 않으려고 제한을 두고 있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그만큼 진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논 풀장의 물도 매일 매일 새롭게 받아서 사용해요. 이러다보니 체험마을을 운영해도 크게 돈이 남지 않는 게 현실이에요.”

건물 등 하드웨어가 아닌 양질의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질울고래실 마을. 이 사무장은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현재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좀 더 마을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어요. 기존 마을 자원을 활용해 ‘문화 가게’, ‘쉬고 가게’, ‘먹고 가게’ 등을 꾸밀 계획이에요. 체험객들은 동네 지도를 들고 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이러한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동네탐험인 셈이에요.”

이 사무장은 이렇게 생긴 마을의 수익 중 일부를 마을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와 아이들의 학습을 위해 재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쓸쓸하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온 마을이 함께 힘을 쓰자는 뜻”이라며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마을의 수익 중 일부를 모아 뜻 깊은 일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푸근한 시골 정취, 특화된 체험프로그램으로 도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질울고래실마을. 올 여름, 이 마을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덜컹덜컹~ 트랙터 마차 타고 시골 정취에 ‘풍덩’

◇양평 질울고래실마을의 논 풀장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다. ⓒ경기G뉴스 허선량